들라크루아:색=빛은 생명과 감정을 의미한다 (ABC_se02_1) by YO

 

범위: p.17~P.112 / 서론 & 들라크루아:색=빛은 생명과 감정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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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혁신은 형태보다는 색채를 위주로 이루어졌지만 색채가 항상 회화에 서 중요시 되지는 않았다. 보들레르가 화가는 색채화가이며 동시에 데생주의자일 수 있다는 새롭고 현대적인 미학 개념을 내놓기 전까지는 색과 데생에 대해 무엇이 더 중요한가에 대한 논쟁이 계속 되었다. 고대에서 17세기까지는 데생이 색보다 우위에 있었고 르네상스 시대 베 네치아 유파로 인해 처음으로 색이 데생보다 우월한, 적어도 동등한 위상에 올라선다. 16세기에 돌체는 컬러(마티에르로서의 색)와 컬러리스(화가에 의해 작품화된 상태로의 색)를 구분하고 이러한 구분은 17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되풀이된다. 17세기 후반에는 데생과 색채의 중요성에 대한 논쟁이 가장 심했던 시기이다. 이 때 로제 드 필이 색채를 옹호하기 위해 여러 논거들을 제시하는데 중요한 것은 이 논거들이 미학적 판단의 기준을 관객의 시각에 바탕을 둔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것으로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림이 관객에게 불러일으 키는 효과인데 이 효과는 색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

데생과 색채의 중요성에 대한 논쟁은 19세기 전반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대립에서도 반복 되었고 앞에서 말한 보들레르가 새롭고 현대적인 미학 개념을 내놓으면서 논쟁을 종식시켰다. 17세기 학자들이 광학에 쏟은 관심이 색채에 대한 이론(뉴턴, 토마스 영, 헤르만 폰 헬름홀츠, 오스트발트의 이론 등)을 만들었고 괴테의 <색채론>이 색채의 이론을 설명하는 물리학적, 수 학적 특성, 즉 개념적인 특성을 개인의 경험적 특성, 즉 감각적 인지의 영역이나 감정의 영역 으로 보는 새로운 입장을 보였다.

점점 색에 대한 관심은 생각하지 않았던 영역으로 넓혀져 19세기에는 슈브뢸과 루드가 인간 이 인식하는 색의 구성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발표하여 화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 시기의 색채론의 기초는 원근법의 특성 때문에 화가에게 제한되었던 자유를 주었다. 들라크루아는 슈브뢸의 이론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감정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수단을 색이라고 여겨 경험적 실험과 이론적 지식에 바탕을 둔 색채화가이다. 법칙의 중요성을 강조 했고 화가가 학자가 될 필요성을 역설했다. 들라크루아의 작품과 글은 쇠라, 세잔, 반 고흐 등 후대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색채에 대한 관심이 20세기 초까지 계속 되었고 칸딘스키가 색채 언어의 기초를 세우면서 절 정에 이르렀다. 데생의 규칙들처럼 그림을 그리는 데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색채에 대한 규 칙을 만들었다. 칸딘스키는 세 가지 측면을 확정짓는데 첫 번째는 물리-화학적인 측면, 두 번 째는 생리적인 측면, 세 번째는 심리적인 측면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현상과 병행하여 ‘단순 한 감상’이라 부를 수 있는 ‘현상학적인’사건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처음으로 받는 시각적 인상과 그 인상을 즉각적으로 하나의 명칭과 관련지으려는 행위로 구성된다. 그리고 인지적인 차원과 감정적인 차원에서 색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은 표현력과 예술 작품을 판단하 는 능력이 중요한 요인을 구성한다.

최근의 몇몇 연구는 색과 움직임 그리고 요철을 지각하는 데 각기 다른 체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인상파의 그림에서 부분혼합이 생겨나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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