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느의 회의> (2)_마지막 편

<세잔느의 회의> (2)

– 메를로 퐁티 의 [현상학과 예술] 중.

(지난 시간 끄트머리: 원근법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 같은 현상에 충실함으로써 세잔은 최근의 심리학자들이 공식화하게 된 것을 발견하였다. 즉, 우리들이 실제로 지각하는 원근법인 생생한 원근법은 기하학적인 것도, 사진기의 원근법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가까이서 우리가 보는 사물들은 그들이 사진에서 보이는 것보다 작게 나타나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물들은 사진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크게 보인다. …비스듬하게 보이는 원이 타원형으로 보인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사진기다라는 가정하에서 우리 눈이 보게 되는 것을 마치 우리가 실제로 지각한 것처럼 간주하는 데서 나온 말이다. 실제로 우리가 보는 것은 타원이 아닌 대략 타원으로 보이는 형태이다. 자기 부인의 초상화에서 그녀는 몸 한쪽에 있는 벽지의 접경은 다른 한쪽에 있는 벽지의 접경과 일직선을 이루고 있지 않다. 만약 어떤 선이 넓은 종이조각 밑으로 지나가면 가시적인 두 부분들은 서로 단절된 것같이 보인다는 것은 주지되고 있는 사실이다. Gustave Geffroy의 식탁은 그림의 밑바닥까지 뻗쳐 있으며, 우리의 눈이 커다란 표면을 훑어볼 때 우리의 눈이 계속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이미지들은 서로 다른 관점들로부터 취해지고 있는 것들이 되고 있으며, 따라서 전 표면은 뒤틀려 보이게 마련이다. 이같이 뒤틀린 모습들을 캔버스에 다시 옮겨 놓음으로써 그것들을 고정시켜 놓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이들 모습들이 지각 속에 싸여있다가 기하학적인 원근법으로 나아가게 되는 자발적 운동을 중단한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색채에 있어서도 일어난다. 회색 종이 위의 핑크색은 그 배경을 초록으로 물들여 놓고 있다. 아카데믹 페인팅은 그림이 실물과 똑같은 대비효과를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배경을 회색 그대로 그려놓고 있다. 인상주의 회화는 자연 속에서의 대상들의 그것만큼이나 생생한 대비를 성취하기 위하여 그 배경에 초록색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색채의 관계를 왜곡시켜놓는 일이 아닌지? 여기서 중단한다면 그렇게 말해도 좋으나 화가의 임무란 초록빛 배경으로부터 그 색이 지닌 원래의 특성을 앗아가 그림 속의 다른 모든 색채들을 조정해 주는 데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잔의 그림의 전면적인 구성을 전체적으로 보게되면 원근법적인 형태 왜곡은 더 이상 그런식으로 보이지 않고, 차라리 자연적인 비젼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떠오르는 질서, 우리 눈앞에 막 나타나 스스로 조직화되어 가는 행위 속의 대상의 인상을 일으키키 위한 것처럼 되어 있는데 바로 여기에 그의 천재성이 있다. 대상을 둘러싸고 있는 선이라고 생각되고 있는 대상의 윤곽석이란 것도 가시적 세계에 속해있는 것이 아니라 기하학에 속해 있는 것이다. 만약 계속되는 하나의 선으로 사과 형상의 윤곽을 그려 놓으면 그것은 그러한 형상을 지닌 하나의 대상을 만들어 내는 일에 불과하다. 그러나 윤곽이란 차라리 사과의 가장자리들이 깊이로 침잠해 들어가는 하나의 이상적인 한계로 보는 것이 옳다. 물론 어떠한 형상의 모습도 나타내 주지 않는 일은 대상들로부터 그들의 동일성을 빼앗는 것이다. 그러나 대상을 단순히 하나의 선으로 그려 놓은 것은 깊이 – 즉 사물이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것으로서가 아니라, 유보들로 가득찬 리얼리티로서 제시되고 잇는 그러한 차원- 를 희생시켜 놓고 있는 것이다. 세잔이 대사을 변조시킨 색채로 부풀리고, 그리고 몇몇 윤곽선을 푸른색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은 위와 같은 이유에서였던 것이다. 우리의 응시는 바로 이러한 유보들 속에서 튀어나오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마치 우리의 지각 속에서 일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모든 것들 속으로부터 드러나는 하나의 형상을 포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식의 유명한 세잔의 이 형태 왜곡은 결코 임의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가 이 수법에 빠진 것은 그가 캔버스를 더 이상 색채로 채우지도 않고, 정물화에서의 긴밀하게 짜여진 텍스추어도 포기 했을 때인 1890년 이후, 그러니까 그의 마지막 시기에 이르러서였다. 그러므로 세계가 그 진정한 밀도로 주어지기 위해서라면 윤곽선은 색채들의 결과이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틈이란 없는 하나의 덩어리이며 색채들의 한 체계로서, 소실 원근과 윤곽선, 모서리 및 굴곡선들이 팽팽한 선들처럼 색채들을 가로지르며 새겨지고 있는 그러한 체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공간 구조는 그것이 형성될 때 떨림이 있게 된다. “윤곽선과 색채는 이제 서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색칠을 함에 따라 그와 동시에 윤곽선은 그려지는 것이다. 색채들이 조화를 이루면 이룰수록 윤곽선은 더욱 정확해지게 된다…색채가 풍부해질 때 그 형태 역시 극에 달하는 것이다. ” 세잔은 형상과 깊이의 감을 일으키기도 하는 촉각적인 감각 tactile sensation 을 제시 하기 위해 색채를 사용하려고 하진 않았다. 촉각와 시각의 이러한 구별은 원초적인 지각에서는 알려져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러한 감관들을 구별하는 법을 알게 되는 것은 추후의 일이요 인간의 신체에 대한 과학의 결과로서일 따름이다. 체험된 대상은 감각기관들의 분담에 입각하여 재발견되거나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들 분담들이 퍼져 나오고 있는 바의 중추로서 처음부터 우리 앞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대상의 깊이나 반들거림, 부드러움, 딱딱함을 그대로 보는 것이다. 심지어 세잔은 우리가 대상들의 냄새를 본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화가가 이 세계를 표현하고자 할 것이라면 그의 색채배열은 이처럼 분리될 수 없는 전체를 내포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그림은 단지 사물들에 대한 힌트를 주고 있는 것이 될 뿐이며, 우리에게 실재 세계를 규정해 주는 격인 이 중대한 통일성, 현존성을 제공하지는 못할 것이다.하나 하나의 화필이 왜 수없이 많은 조건들을 만족시켜야만 하느냐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때때로 세잔은 하나의 터치를 위해 몇 시간 동안을 생각하기도 했는데, 이는 베르나르가 알려 주는 바와 같이 각각의 터치가 “공기, 빛, 대상, 구성, 성질, 윤곽 및 스타일을 포함”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존재하고 있는 것을 표현한다는 일은 이렇듯 끝이 없는 작업인 것이다.

또한 세잔은 사물이나 인물들의 인상 physiognom 을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단지 그는 색채로부터 드러나는 것으로서의 인상을 파악하고자 했을 뿐이다. 사람의 얼굴을 “하나의 대상으로서 보고” 그린다는 것이 거기에서 “사유”를 벗겨내는 짓이 아니다. “화가는 그것을 해석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다”, “화가는 바보가 아닌것이다” 라고 세잔은 말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해석”이라는 말은 본다는 행위와 구별되는 반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주 작은 푸른색 littel blues 들이나 또 아주 작은 밤색들 little maroons 을 칠하지만 나는 그의 응시를 포착하여 전달한다. 어두운 초록빛을 붉은색과 결합시켜서 어떻게 슬픈 빛을 띤 입, 혹은 웃음 띤 얼굴을 그려낼 수 있겠는가라고 누군가 트집을 잡는다면 그것은 우수운 일이다” 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우리의 개성이 드러나고 파악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응시 속에서인데, 이 응시라는 것은 색들의 결합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타인의 마음이라는 것도 육화된 모습으로서만이, 즉 그 사람의 표정, 제스추어 등에 속해 있는 것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영혼과 신체의 구별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유와 비젼의 구분 역시 무의미한 것이다. 고로 이러한 개념들이 유도되며, 동시에 양자가 분리될 수 없게 되어 있는 바의 원초적인 경험으로 세잔은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먼저 개념화부터 해 놓고 여기에 맞는 표현을 찾는 화가는 우선 자연 속에서 인간이 드러날 때의 신비- 즉 우리가 한 개인을 보는 매순간마다 세로워지는 신비-를 놓치게 된다. <슬픔의 피부>에서 발자크는 “방금 내린 눈이 이루어 놓은 층처럼 그렇게 하얀 식탁보, 거기엔 식기들이 모두 대칭으로 솟아있고, 그 식기 위에는 황금색 빵이 마치 왕관처럼 얹혀져 있다”라는 묘사를 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세잔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젊은 시절 내내 나는 방금 내린 눈처럼 그 하얀 식탁보를 그리고자 하였다….이제 나는 누구든 대칭으로 솟아 있는 식기들, 그리고 황금색 빵을 그리려 하기만하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내가 ‘그렇게 경험했듯 왕관을 쓴’ 것처럼 그린다고 한다면 당신을 알만 합니까?그러나 내가 자연 속에 있는 그대로의 식기나 빵을 정말로 균형있게 하고, 거기에 음영을 준다면 당신은 왕관이나 눈이나 일체의 흥분들이 역시 거기에도 있을 것이라 함을 확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이 만든 물건들 – 도구, 집, 거리, 도시 등 – 가운데서 살고 있으며, 이들을 보게 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이 물건들을 사용하는 우리 인간의 행위를 통해서이다. 이 모든 것들은 필연적으로 요지부동인 상태로 그렇게 존재하는 것처럼 흔히들 생각하고 있다. 세잔의 그림은 이러한 습관적인 사고를 잠시 중단시키고, 인간이 자기 자신을 앉혀 놓았던 비인간적인 자연의 근저를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까닭에 세잔이 그리는 인물들은 마치 인간이 아닌 다른 종류의 생물이 바라보는 것처럼 그렇게 낯설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 역시 물활론적인 교섭 animistic communion 이 일어날 수 있게끔 제반 속성으로부터 벗겨져 있다. 풍경화에는 바람 한 점이 없으며, 라크 단씨에는 움직임 하나 없다. 태초에 그러하였던 것처럼 모든 대상은 얼어 붙은 것처럼 머뭇거리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인간이 안이함을 느낄 수 없으며 모든 인간적인 감정의 유출이 금지된 낯선 세계이다. 세잔의 그림을 본 후 다른 화가의 그림을 본다면 비애의 순간이 지나간 다음 다시 시작된 대화가 절대적 변화를 은폐시켜 생존다들에게 그들의 안정을 가져다 주는 것 같은 그런 편안한 기분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직 인간만이 자신들이 부여한 인간성의 질서 밑바닥에 있는 사물의 근원을 올바로 꿰뚫는 그와 같은 비젼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모든 사실은 동물은 사물들을 볼 수 없으며, 또한 진리만을 기대하는 입장에서는 그들에게로 침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사실주의적인 화가는 원숭이와 다를 바 없다는 베르나르의 말은 사실과 상반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세잔이 어떻게 미술의 고전적 정의 – 자연에 추가된 인간이라는 정의 – 를 다시 부활시킬 수 있었는가를 알고 있다. 세잔의 그림은 과학적 방법이나 전통을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파리에 있을때 그는 매일 루브르 박물관엘 갔었다. 그림의 기교는 반드시 터득되어야만 하며, 평면이다 형태에 대한 기하학적 연구는 이것을 배우는 과정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었다. 그는 풍경의 지질학적 구조부터 알아보았으며, 가시적 세계에 관련되어 나타난 이 모든 추상적인 관계들이 그림을 그리는 작업시에 반드시 영향을 주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테니스 선수가 공을 칠 때 마다 그 근저에는 그 게임의 규칙이 깔려 있듯이 해부학과 디자인의 규칙들은 그가 붓을 댈 때마다 항상 같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화가의 손놀림을 유도하는 것은 원근법이나 기하학 또는 색채에 관한 규칙 등이거나 혹은 그런 것을 위한 특수한 지식이 아니다. 화가의 모든 행위를 주도하여 서서히 작품을 형성시키는 것 같은 유도체는 오직 하나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전체성 혹은 절대적 풍요성으로 나타나는 풍경이며, 정확히 말해 세잔느가 말한 “모티프” 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먼저 풍경의 지질학적인 토대를 찾는 데서부터 시작했으며, 세잔의 부인의 말을 따르자면 그 다음은 꼼짝 않고 눈을 크게 튼 채 그 시골 풍경에서 “발아하는” 일체의 것을 바라보고는 했다. 그가 직면했던 일은 첫째로 이제껏 배운 모든 과학으로부터 지식을 잊는 일이고 둘째로 이러한 과학들을 통하여 스스로 서서히 드러나는 하나의 우기체로서의 풍경의 구조를 재포착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포착한 모든 부분적인 광경들이 서로 접합되어야 하며, 우리의 눈이 여기저기 산만하게 바라본 것이 다시 통일되어져야 한다. 가스께가 말한대로 “방황하는 자연의 손에 가담해야 한다” 그리고 “흐르고 있는 세계의 일분, 일분, 이것을 풍부한 리얼리티로서 그려야 한다.” 세잔 자신도 자기가 생각하던 바가 갑자기 완성되어질 때가 있어, “나는 모티프를 가졌다” 고 말을 하곤 하였으며, 풍경화의 중심은 너무 높게 너무 낮게 자리잡아도 안 되며, 모든 것이 잡힐 수 있는 그물 안에 생생하게 포착되어야 한다고 설명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난 후에 그는 지질학적인 골격을 그린 처음의 목탄 스케치를 둘러싸기 위해 색채를 사용하여 그림의 모든 부분을 칠하기 시작했다. 그의 그림은 먼저 풍요성 fullness 과 밀도 density 를 가지며 다음으로 구조와 균형 속에서 자랐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에 갑자기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풍경은 내 속에서 자기 자신을 사유하고 있는 것이며, 그리고 내 자신은 풍경의 의식이다.” 이러한 직관적인 과학보다 자연주의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것은 다시 없을 것이다. 요컨대 미술은 모방이 아니며, 또는 본능이나 훌륭한 취미에따라 만들어진 그 무엇도 아니다. 그것은 표현행위의 과정인 것이다. 즉 단어들의 기능이 명명하는 것 말하자면 혼미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드러나는 것들의 성질을 포착하여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대상으로 우리앞에 놓는 일인 것과 마찬가지로 가스께의 말을 빌리면 화가의 임무란 “객관화하는 일”, “투영시키는 일”, “포착하는 일” 인 것이다. 단어가 그들이 지시하는 사물과 조금도 닮은 데라고는 없는 것처럼, 그림은 실물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는 의미에서의 눈속임도 아니다. 세잔 자신의 말처럼 그는 “여태컷 그려져 본 적이 없었던 것을 그림으로 썼고, 그리하여 딱 한번 그것을 회화로 만들었다.” 우리는 끈적끈적하고도 애매한 외형을 잊고, 이들 너머 이들이 드러내는 바 사물에 곧장 다가서게 된다. 화가는 자신이 아니었으면 서로 다른 의식을 지닌 분리된 삶 속에서 벽으로 가로 막혀 있었을 그 무엇 – 모든 사물의 요람인 외관들의 진동 – 을 파악하여 그것을 가시적인 대상들로 환원시킨다. 그리하여 화가에게 있어서 가능한 정서가 있다면 그것은 낯설음의 느낌이며, 하나의 서정주의가 있다면 존재의 끊임이 없는 부활의 그것이라고 할 수 있따.

다빈치의 모토는 시종일관된 엄밀성이었으며, 시작법에 입각하여 창작된 모든 고전적인 작품들은 예술을 창조한다는 것이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발자크나 말라르메처럼 세잔이 부닥친 난관은 그와는 다른 종류였다. 발자크는 삶을 오직 색채로만 표현하길 원했고 또 자신의 걸작을 숨김 채 발표하지 않는 한 화가 – 아마 들라크루와가 그 모델인것 같음 – 를 서술해 놓고 있다. 주인공인 프렌호퍼가 죽었을 때 그의 친구들은 여러가지 색과 기괴한 선들이 뒤범벅이 된 벽화만을 발견하였다. 세잔은 발자크의 이 <알려지지 않은 걸작>을 읽고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바로 프렌호퍼하고 말했다. 발자크 자신은 “사실화 realization”의 문제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어쩄든 그의 이러한 노력은 세잔에게 빛을 던져 주었다. <슬픔의 피부>에서 발자크는 “표현되어져야 할 과학” 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인간 희극>에 등장하는 실패한 천재들 중의 한 사람인 루이 랑베르를 통해 발자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나는 어떤 발견들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그러나 나의 손을 묶고 나의 입을 다물게 하며 나의 소명과는 반대 방행으로 나를 끌고 가는 이 힘을 어떻게 말해야 좋을 까?” 발자크가 자기 시대의 사회를 이해하는 데 촛점을 맞추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전형적인 순회 판매원을 묘사하거나 교수라는 직업을 “해부하는 일”, 혹은 사회학의 기초를 마련하는 것조차도 초인의 일은 아니다. 일단 금전이나 정열 같은 가시적인 힘들을 명명하고, 이것들이 뚜렷이 작용하는 바를 묘사한 다음에, 발작은 그 모든 것들이 어디로 가고 있으며, 그것 뒤에 숨어있는 원동력은 무엇이며, 그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예컨대, “그 모든 노력이 문명의 알 수 없는 미스테리 속으로 기어들어 가려고 하는” 유럽 등에 대해 – 의문을 가진다. 요컨대 그는 이 세계를 결합시켜 주고, 가시적인 형태를 증식시키는 원인이 되는 내적인 힘이 무엇인가를 알고자했던 것이다. 회화의 의미에 대해 프렌호퍼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 “손이라 단지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포착되어 전달됨에 틀림없을 어떤 사상을 표현하여 지속시키는 것이다….이것이야말로 진짜 투쟁이다. 많은 화가들은 미술의 이와 같은 테마를 모르면서도 본능적으로 이러한 일에 성공을 하고 있다. 당신은 여인을 그리고 있는 것이지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화가란 대부분 사람들이 항상 가담되어 있으면서도 보지 못하였던 광경을 포착하여 그들 중 가장 “인간적인” 사람에게 그것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쾌락만을 위한 예술 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물론 종래의 관념들을 새로운 방법으로 연결시키으로써 혹은 여태껏 보아 온 형태를 제시함으로써도 쾌락을 가져다 주는 대상을 고안할 수는 있다. 이러한 고물상 식의 그림을 그리거나 표현을 하는 방식이 일반적으로는 문화라는 의미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세잔이나 발자크 같은 예술가는 문화화된 동물이 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 문화를 그 근본으로까지 파 내려가 이해하여 거기에 새로운 구조를 부여하고 있따. 그는 세상에 처음 태어난 사람이 말했던 것처럼 말하며, 어누 누고도 이전에 그린 적이 없었던 것처럼 그린다. 그러므로 그가 표현하고 있는 것은 명료하게 규정된 사유의 번역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유는 이미 우리 자신들이나 다른 사람에 의해 표명되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 conception 은 제작 execution 에 선행할 수가 없는 법이다. 예술적 표현의 행위가 있기 전에는 다만 막연한 흥분이 있을 뿐이며, 완성되어 이해된 작품 그 자체가 있고서야 비로소 ‘말할 것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 예술가는 문화라든지 제관념의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바의 소리 없는 고독한 경험의 근원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는 작품이 단순한 외침 이상의 무엇이 될지 알지도 못한 채, 또 그 작품이 생겨나게 된 개인의 삶의 흐름으로부터 과연 그것이 분리될 수 있는 것인지, 혹은 동일한 개인의 삶의 미래나 작품과 공존하는 단자들 및 미래의 개체가 이룰 열려진 공통체와 일치될 수 있는 의미에 대한 독립적인 존재성을 가져다 주는 것인지를 알지도 못한 채, 마치 인간이 그 첫번째의 말을 내뱉듯이 자기 작품을 내던져 보이는 것이다. 예술가가 말하려는 것의 의미는 실상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있다. 그것은 아직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은 사물들 속에 있는 것도 아니며, 예술가 자신이나 그의 모호한 삶 속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소휘 “문화인 cultured man” 들이 스스로를 감금시키고 있는 일로 만족하고 있는 기존의 이성으로부터 떠나, 그 자체의 고유한 근원을 가진 다른 이성으로 우리를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다.

베르나르가 세잔을 인간의 지성으로 돌려 놓으려고 했던 시도에 대해 세잔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창조주의 지성을 향해있다” 라고. 확실히 그는 무한한 로고스의 사상과 계획을 향해 있었다. 따라서 세잔의 불확실성과 고독은 그의 기질적인 신경과민에 그 원인을 돌려 놓을 것이 아니라, 그의 예술이 가진 목표로 설명되어져야 한다. 물론 풍부한 감각, 강렬한 정서, 그리고 자신이 소망했음직도 했던 생활을 부수고, 다른 사람들과 동떨어져 살지 않을 수 없게 만든 번뇌와 미스테리가 섞인 모호한 감정들이 그에게 유전적으로 전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러한 기질들도 표현행위없이는 작품을 창조해낼 수가 없는 법이며, 또한 이러한 성질들이 그의 예술적 활동에 난관이 되고 있었는지 아니면 도움을 주고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세잔이 봉착했던 난관은 최초의 말 first word 라는 난관이었다. 그는 자신이 전지전능하지도 않으며, 신은 더욱 더 아니므로 스스로 무력하다고 행각하면서도 이 세계를 묘사하고자 했으며, 그것을 하나의 광경으로 완전히 바꾸어서 마침내 이 세계가 어떻게 우리에게 접촉되고 있는가를 가시적이게  해주려는 그런 일이었다. 물리학에 있어서의 새로운 이론과 같은 것은 계산이 그에 대한 관념이나 의미들을 이미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는 측정 기준에 연결시켜 놓고 있기 때문에 쉽게 증명될 수 있다. 그러나 예술가이기도 하며 혹은 철학자이기도 한 세잔 같은  화가에게 있어서는 어떤 관념을 창조하여 표현해 놓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화가들은 그 관념이 다른 사람의 의식 깊숙이 그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할 경험들을 환기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성공적인 작품은 그 자신의 교화를 가르치는 이상한 힘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책이나 그림 속에 나타난 실마리들을 따라가는 독자나 관람자들은 징검다리를 놓고, 각 예술가들의 스타일이 지니고 있는 모호한 명료성을 통해 껑충껑충 뛰게 됨으로써 마침내 예술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바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화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미지를 구성해 놓는 일 뿐이다. 그리고 그는 이 이미지가 다른 사람에게서도 소생될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예술작품은 각기 고립된 우리의 삶들을 결합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 이르면 예술작품이란 고집스러운 망상이나 끈질긴 환각처럼 어느 한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채색된 캔버스로서 단지 조그만 공간 속에 있을 뿐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영환한 획득물인 양 가능한 한의 우리 모두의 마음에 대한 요구를 가지고 여러 마음들 속에서 미분화된 채 거주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유전적인 경향들”이나 “제영향들” -세잔의 생애 중 우연적인 사건들에 불과한 것들 -이라 할 것은 자연과 역사가 그더러 해독해내라고 준 텍스트인 셈이다. 말하자면 그것들은 세잔 작품의 문자적 의미만을 제공하고 잇는 것들일 뿐이다. 그러나 예술가의 창조란 인간의 자유로운 의사결정과 같이, 이처럼 주어진 의미에 대해 그들 사건들이 있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형성적 의미 figurative sense 를 부여하는 일이다. 세잔의 삶이 우리가 보기에 그 속에 이미 자기 작품의 씨앗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가 거의 작품을 먼저 알고 난 다음에 그 작품을 통해 그의 삶의 제반 여건을 둘러보고 그리하여 작품으로부터 빌려 온 의미를 그 사건들에 씌우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잔에 있어서 앞서 열거해 온 사건들이나 흔히 우리들이 절박한 조건들이었다고 예기하는 이와 같은 제반 사건들이 설사 그가 처해있던 투사의 그물 속에 그 모습을 나타낼 것이었다해도 그럴 수 있었다고 되는 것은 그가 어떻게 살았느냐하는 문제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입장에서 그가 무엇을 살아야만 했던가 하는 문제로서 다만 그들을 제시함으로써인 것이다. 따라서 처음에 부과된 주제인 이러한 사건들은 그들이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어떤 존재 속으로 복귀될 때 어느 한 삶을 자유롭게 해석한 그 삶의 상징이나 모노그램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자유라는 것에 관해 과오를 저지르지 말도록 하자. 삶에 “주어진 것들”에 대해 과도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아니면 삶의 발전을 파괴시키는 어떤 추상적인 힘으로 이를 생각해서는 안된다. 물론 한 예술가의 삶이 그의 예술작품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나 또한 이들이 서로 관련을 가지고 있음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기에 창조될 이러이러한 예술작품이 이러이러한 삶을 요구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애초부터 세잔의 삶에 유일한 평형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의 미래의 작품에 대한 지지로부터 유래되고 잇는 것이다. 즉 그의 삶은 그의 미래의 작품의 투영이었다. 따라서 앞으로 제작될 작품은 실상 어느 정도 넌지시 암시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 암시가 그의 삶과 작품에 관한 단 하나의 모험을 이루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을 어떤 결정적인 원인으로 보아선 안된다. 여기서 우리는 원인과 결과를 초월해 있는 것이다. 원인이나 결과는 둘다 그가 되도가 원했던 것과, 하고자 원했던 것의 공식인 영원한 세잔이라는 동시성 속에 다 들어 있다. 그러므로 세잔의 작품은 그가 가진 정신분열증이라는 병의 형이상학적 의미 -모든 표현적 가치가 일단 중지된 채 얼어붙은 외관들의 총화로 환원된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 를 드러내 주는 것이므로 그의 정신분열적인 기질과 작품 사이에는 하나의 친밀한 관계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그의 병은 단순히 부조리한 사실이나 불행이 아니다. 그것은 곧 인간 존재의 일반적인 가능성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특히 인간 존재가 그의 역설들 중의 하나인 표현이라는 현상 phenomenon of expression 에 용감하게 직면했을 때 일어난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신분열증에 걸렸다는 것과 세잔이 되었다는 것은 동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와 같은 세잔의 최초의 거동에서 그리고 그가 사물에 반응을 하는 방식에서 이미 분명하게 나타난 이와 같은 행위로부터 창조적인 자유를 분리시키는 일은 불가능한다. 세잔이 자신의 그림들 속에 있는 대상이나 얼굴에 부여했던 의미는 그것이 그에게 현상되고 있는 세계 속에서 그에게 스스로를 드러낸 것이었다. 세잔이 했던 일은 단순히 이 의미를 해방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려달라고 아우성 치는 것은 그가 본 대상이나 얼굴 그 자체였던 것이며, 세잔이 했던 것은 다만 그들이 말하고자 갈구하고 있는 바를 표현하는 일 뿐이었다….. (끝)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